워킹!! by

일상물은 역설적으로 ‘일상'을 보지 않는다. 만화에서 그려내는 일상의 범위를 축소해 일상보다 더 일상적인 일상 판타지를 그려낸다. 아즈망가 대왕에 나오는 여고생이나 요츠바랑에 나오는 어린아이는 어디에도 없으며, 케이온의 부활동도 히다마리 스케치의 하숙집도 없다.  일상물이 현실의 일상을 반영하는 순간 더 이상 장르로서의 일상물일 수 없게 된다. 20대 여성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평가받는 나나난 키리코의 만화를 일상물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타카츠 카리노의 4컷만화 WORKING!!(이하 워킹!!)은 훗카이도의 패밀리 레스토랑 와그나리아에서 일하는 직원과 아르바이트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일상물이다. 2010과 2011년, A-1 픽쳐스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호평을 받았다.

대개의 일상물이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 달리 워킹!!은 아르바이트 근무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학생과 교직원에 한정되지 않고 대학생, 니트, 직장인 등 캐릭터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도 특이할 만하다. 타카츠 카리노의 신작 서번트X서비스는 구청복지과를 배경으로 공무원의 민원 일상을 그리고 있으니, 탈학원화가 작가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요 내용은 아르바이트생들의 일상인데, 캐릭터 설정이 다소 극적이고 이것이 연애까지 얽히면서 웃음을 짓게 한다. 예를 들어 이나미 마히루의 폭력적인 남자공포증을 고치느라 타카나시 소타는 매일 이나미에게 얻어맞는데, 자신을 위해 노력해주는 타카나시에게 사랑을 느끼는 이나미와 달리 작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타카나시에게 이나미는 폭력적인 연상녀일 뿐이라서 연애 진도가 꼬인다는 식이다. 또한 여느 일상물과 달리 워킹!!은 캐릭터의 가족사나 과거를 거리낌없이 들춰낸다. 이혼 경력이 있는 누나, 이지매를 당해 학교를 그만둔 과거, 와이프의 실종, 여동생의 가출, 딸에 대한 집착이 강한 아버지 등 현실에선 겪고 싶지 않을 일들을 등장시키고 심지어 이것들을 개그소재로 삼는다. 

일본 서브컬쳐에서 학교가 일종의 치외법권 판타지라면, 만화의 배경을 학교에서 직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폐쇄적인 판타지를 대신해 개방된 현실이 자리하게 된 듯 하다. 자신에게 할당된 모에요소를 가지고 플레이를 하기만 하던 캐릭터들도 돈을 벌기 위해 사회에 한 발 내딛으면서 현대 일본사회의 병소를 가지고 플레이를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좀 더 발전하면 ‘빈곤개그'가 되는데, 얼마전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된 알바뛰는 마왕님이 여기에 해당한다.)

아예 비현실적인 내용을 통해 ‘일상적'인 것을 강조하는 아라이 케이이치의 일상이나 전대물 캐릭터를 통해 장기불황 시대의 일상을 다루는 천체천사 선레드처럼 일상물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만화도 있지만, 워킹!!은 아픈 현실을 캐릭터 설정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돋보적이다. 물론 워킹!!이 일본사회를 고발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이 만화는 일상물답게 캐릭터들을 충돌시키고 가볍게 개그를 치며 장르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다만, 만화를 구성하는 요소 중 일부가 현실이라면 겪고 싶지 않을 병든 현대사회의 일면이며, 이 요소들을 캐릭터에 녹여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병든 캐릭터’를 부분적으로 연출한다. 만화책을 덮었는데 워킹!!의 캐릭터가 눈에 밟힌다면 아마도 이런 병든 모습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by 해달

마법소녀물은 일본 서브컬쳐의 폐쇄성을 잘 보여주는 장르 중 하나로, 초기 마법소녀물에서 축적된 설정들이 굳어지며 장르가 만들어졌다. 장르가 성립되어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장르 내부의 특수성 - 주인공이 소녀여야 하는 이유나 변신에는 어떠한 원리가 있는지 - 에 대해 아무도 묻지 않는다. 캐릭터가 귀엽고 변신할 때 서비스씬이 나와주면 마법이라는 편리한 설정으로 모든 것이 묵인된다.

물론 이에 대한 메타장르적 접근을 시도하는 작품도 있었다. 이것은 좀비입니까?의 아이카와 아유무처럼 마법소녀를 남자로 설정한 경우도 있고, 마법소녀물은 아니지만 큐티하니의 공중원소고정장치처럼 변신에 과학적 근거를 마련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예는 메타장르적이라기 보단 장르 공식을 비틀거나 전면화하려는 시도로 봐야한다.

2011년 방영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이하 마마마)가 마법소녀물 계보에서 차지한 위치는 독특하다. 마마마는 신보 아키유키의 그래피컬한 연출과 아오키 우메의 그림, 우로부치 겐의 암울한 시나리오로 주목을 끌며 큰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DVD/블루레이 판매량은 6만장을 넘었으며, 그 여세를 몰아 극장판 제작까지 들어갔고, 일본의 한 비즈니스 잡지에서 현대교양으로 마마마가 소개하기도 했다. 작품 내부적으로는 히로인 중 한 명이 초반에 잔인하게 죽거나 마법소녀를 신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등 우로부치 겐의 과감한 스토리로도 화제가 되었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작품 내적인 요인에 의해 마마마가 마법소녀물의 계보에서 차지하게 되는 위상이다.

스토리 초반부만 보면 마마마는 마법소녀물의 공식를 충실히 따른다. 선택된 소녀들이 마법소녀가 되어 변신을 하고 마녀라는 악의 존재를 퇴치하며, 이에 대한 보상으로 소원 하나를 이루게 된다. 초기 마법소녀물에 나타나는 ‘어른이 되고 싶은 소녀의 욕구’가 ‘소원'으로 대치되었다는 점에선 고전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토모에 마미가 초반에 죽으면서 이러한 설정은 모두 해체되어 재구성된다. 마력의 근원이었던 소울젬은 마법소녀의 물질화된 영혼이었으며, 마법소녀들은 마녀와 싸우기 보단 소울젬을 정화하기 위해 다른 마법소녀들과 영역다툼을 해야했다. 그리고 마녀와의 싸움에 대한 보상인 줄 알았던 소원은 미끼였을 뿐, 소녀들은 소원에 대한 댓가로 마녀가 되는 운명을 짊어져야 했다. 마법소녀란 단어도 마녀를 가지고 만든 큐베의 말장난이었다.

이러한 설정은 큐베가 카나메 마도카에서 설명하는 열역학 법칙(엔트로피)에서 암시된다. 마법이라는 편리한 설정으로 모든 기적을 행하는 여타의 마법소녀물들과 달리, 기적보다 더 큰 희생(비용)을 치뤄야 함을 마녀로 소모되는 마법소녀를 통해 여과없이 보여준다. 또한, 아무리 소울젬을 정화한다 하더라도 결국 마녀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도 에너지 변환 과정에서의 열손실로 인해 열적평형상태에 도달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을 따르고 있다. 마법을 에너지 비용적인 측면에서 계산함으로써 마법소녀물에 대해 메타장르적인 접근을 시도한 셈이다.

이 열역학 법칙은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언급되는 ‘등가교환의 법칙'과 대비된다. 마법처럼 보이는 연금술은 실제론 동량의 교환대상이 필요한 일종의 과학이며, 이 등가교환의 법칙을 넘어서는 신화로서 현자의 돌이 등장한다. 하지만 현자의 돌이 이미 다수의 영혼이라는 비용이 지불되었음이 밝혀지면서 신화는 등가교환의 법칙으로 설명가능한 과학으로 강등된다. 등가교환의 법칙은 고전물리학처럼 삼라만상을 예측, 설명, 실현 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에 반해 마마마에서는 아케미 호무라의 무리한 타임슬립이 카나메 마도카의 인과를 축적시켜 최악의 마녀라는 사이드이펙트를 낳고, 축적된 인과를 기반으로 신이 된 카나메 마도카가 마녀라는 최악의 비용을 ‘마법소녀의 소실'과 ‘마수' 수준으로 감면한다. 즉, 마법소녀가 일으키는 마법의 결과는 예측불가능하며, 세계의 법칙이 설명가능한 수준까지 밝혀져도 이를 완전히 뒤집지 못한다. 요컨데 마마마는 불확정성의 원리와 열역학 제2법칙을 비관적이고 운명론적인 관점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처럼 마마마는 마법소녀물을 성립시키기 위해 팬들이 묵인하는 여러 공식 - 혹은 클리셰 - 이 얼마나 비싼지 열역학적 관점에서 계산한 명세서를 폭로한다. 특히나 마법소녀물 같이 묵인수준이 높은 오타쿠 장르는 매우 비싼 명세서를 숨기고 있으며, 이 명세서에 적힌 금액을 확인한 오타쿠들은 충격을 빠지면서도 장르 폐쇄성을 확인해 충성도를 높이게 된다.

흥행성적을 따지면 마마마의 메타장르 실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남은 건 아직 개봉하지 않은 극장판 반역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속행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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